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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회자 칼럼
[칼럼]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 (2020년 1월 19일)

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

 

지난 주일 “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믿고 그 삶이 변화됩니다”라는 말씀을 전한 후, 저는 한 주일 동안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. 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신앙생활을 힘겹게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까?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, 저는 성도들의 삶이 여전히 힘든 이유는 환경이나 사람 때문이 아니라,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. 자아가 죽지 않고 여전히 펄펄 살아있기 때문에 똑같은 환경인데도 더 힘들게 느껴지고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생기는 것입니다.

 

신앙생활의 본질은 예수님과 함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,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.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크리스천이 될 때 침례를 받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받는 것이죠. 죄로 인해 심판받아야 할 우리의 자아는 이미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, 여전히 그 옛 자아에 지배를 받으며 살기 때문에 삶에 만족이 없습니다.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상처를 잘 받고 굴곡이 심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도 역시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 상처받기 쉬운 자신의 자아를 붙잡고 살기 때문입니다.

 

자아가 죽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늘 “자기가 옳다”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. 이런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잘 부딪칩니다. 이런 모습을 개인의 성격이나 개성으로 여기면서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,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말합니다. “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(8:7)”라고 했습니다.

 

구약의 사사시대의 특징은 “각자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( 21:25)”이죠. 그런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세계를 보기 힘듭니다.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기가 문제의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.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문제를 훤히 다 보고 있는데, 정작 자기만 그것을 모릅니다.

 

잠언 26 12절은 “너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나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 (There is more hope)”라고 유머러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. 그래서 교만이 가장 무서운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. 그리고 교만 중에도 영적 교만이 가장 무섭습니다.

 

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의 원인은 바로 내 생각에 옳은 대로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. 부부가 싸우는 이유도, 교회 안에 갈등과 분열이 있는 이유도 잘 생각해 보면 “내가 옳다”는 생각 때문입니다. 뜻과 의도는 좋아도 그 뜻을 펼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, 자신의 자아가 튀어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. 그렇게 자아가 살아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답게,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. 그래서 우리의 자아는 십자가에 못을 박고 계속 예수로 살게 해야 합니다.

 

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” (2:20)

 

저는 필그림의 모든 성도님들이 계속 “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”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승주찬! (오중석 목사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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